대학입시에서 정시 전형의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방향이 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한동안 학생부 중심 전형 확대가 교육 정책의 핵심 기조였던 만큼, 이번 변화는 입시의 근간을 다시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조정입니다. 특히 수능의 영향력이 다시 커지면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 모두 큰 혼란을 겪고 있으며 교육 현장의 방향 설정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정시 확대가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교육 다양성과 학교 수업을 왜곡시키는 결정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정시 확대의 배경과 논란, 수능 중심 평가의 영향, 그리고 장기적인 입시 방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정시 확대는 왜 다시 추진되는가
정시 확대 정책은 학종 중심의 수시 전형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처음 도입 당시 다양한 학생의 개성과 역량을 반영하고, 고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수행한 학생에게 입학 기회를 주기 위한 취지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정보력과 사교육의 개입, 평가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작용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일부 고등학교의 유리한 조건, 비교과 관리의 어려움, 불투명한 평가 기준은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만을 누적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시 확대는 공정성 회복의 카드로 제시되었습니다. 수능은 전국 단위의 동일한 시험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며, 채점의 명확성과 통계적 분석의 용이성 덕분에 정량적 기준에 기반한 전형이라는 점에서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학부모와 수험생 사이에서는 수능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평가 방식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와 일부 대학들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수능 중심의 정시 비율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시 확대가 반드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수능이 공정하다고 해서 교육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그것입니다. 수능은 일회성 시험이기 때문에 학생의 장기적인 학업 노력이나 학교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지 못하며, 단기 집중 학습에 유리한 구조라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특히 수능이 강화되면 고등학교 수업이 다시 시험 대비 중심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고교학점제나 교육과정 다양화 등 최근의 교육 개혁 방향과 상충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정시 확대가 실제로는 사교육 의존도를 오히려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수능은 난이도와 변별력이 강조되는 시험이기 때문에 고득점을 목표로 하는 수험생일수록 전문적인 문제 풀이와 실전 전략이 필요해지고, 이는 고가의 사교육 시장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수능이 공정한 시험이라는 인식은 유지되더라도 그 준비 과정이 계층 간 격차를 반영하는 구조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존재합니다. 정시 확대의 논리는 단순하지만 그 효과는 복합적이며, 실제 교육 현장에서의 영향은 예상보다 훨씬 다양하고 깊습니다.
2. 수능이 다시 중심이 되면 나타나는 변화들
정시 전형이 확대되면 자연스럽게 수능의 중요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수험생은 수능에서의 성적 향상이 대학 입학의 핵심 열쇠가 되기 때문에 고등학교 생활의 상당 부분을 수능 준비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는 다시 교실 수업의 변화로 이어지며, 교사와 학생 모두 수능에 초점을 맞춘 학습에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실제로 수능 비중이 높았던 시기에는 학교 수업이 문제 풀이와 기출 문제 중심으로 운영되었으며, 수능 출제 경향에 따라 교육 내용이 왜곡되거나 교과서 외 자료가 수업에 활용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수능의 구조 자체도 정시 확대와 맞물려 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선택 과목 간의 점수 유불리 문제가 다시 이슈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통과목 비중 확대나 과목 구조 개편 등이 함께 추진될 수 있습니다. 이는 교육과정 선택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학생들이 수능에 유리한 과목을 중심으로 과목을 고르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특히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으며, 다양한 교과 이수 경험이 축소되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습니다.
학생부 중심 전형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비교과 활동이나 진로 탐색 활동, 수행 평가 등 다양한 경험이 평가 요소로 작용하면서 고등학교 생활이 보다 다양화되고 학생 중심으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시 확대와 수능 중심 체제로의 회귀는 이러한 다양성을 위축시킬 수 있으며, 학생들은 다시 시험 점수 중심의 학습과 생활로 돌아가게 될 우려가 큽니다. 이는 교육의 본질이 성적 중심으로 다시 고정되는 결과를 낳게 되며,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성, 융합 능력, 공동체적 사고 같은 핵심 역량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고등학교 간 교육력 차이 문제도 수능 중심 체제에서는 다시 부각될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이나 명문고 출신 학생들이 수능에서도 더 높은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고, 이는 입시 결과의 편중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수능 중심 전형의 확대는 고등학교 교육에서의 평등과 다양성을 저해하고, 일부 계층과 학교에 유리한 구조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능이 객관적이라는 단일 기준만으로 정시 확대를 정당화하는 것은 교육 전체를 보는 시야에서 보면 다소 협소한 접근일 수 있습니다.
3. 정시 확대와 수능의 역할, 어디까지가 적절한가
입시 제도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어떤 전형 방식도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중요한 것은 그 전형이 교육의 본질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정시 확대는 분명히 평가의 명확성과 단순성, 공정성 측면에서 일정한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성실하게 수능을 준비한 학생에게는 명확한 기준과 목표를 제공하며, 대학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학업 역량을 갖춘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능의 무게가 과도해지는 순간, 교육은 균형을 잃게 됩니다. 수능은 평가 도구의 하나일 뿐이며, 학생의 가능성과 전인적 성장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는 아닙니다. 따라서 수능은 전체 입시 구조에서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되, 그 외의 다양한 전형과 평가 방식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정시 확대가 단순히 수능 비율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입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입시 제도는 교육과정과 일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고교학점제와 선택 중심 교육과정, 고등학교 수업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교육정책 방향과 수능 중심 정시 확대는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입시 정책은 장기적인 비전 속에서 교육과정과 평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수능이라는 하나의 기준이 모든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또한 수능의 구조 자체에 대한 개선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과목 간 유불리 해소, 출제 범위와 문항 유형의 투명성, 학생의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문항 개발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 하며, 단순 암기형 문제보다는 실제 학습과정과 연계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수능의 신뢰성을 높이고, 수능 중심 전형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시 확대는 단순히 하나의 전형 비중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육 전체의 방향과 가치를 재조정하는 일과도 같습니다. 수능은 일정한 기준을 제공하는 도구로서의 가치가 분명히 있지만, 그 무게가 지나치게 커질 경우 교육의 다양성과 학생의 삶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입시 제도가 학생의 성장을 도우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작동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시냐 수시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입시가 교육을 왜곡하지 않고 학생의 가능성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체제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